주식 좀 해봤다는 사람이면 ‘CAN SLIM’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봤을 거다. 성장주를 고르는 일곱 가지 기준을 묶은 방법론인데, 이걸 만든 사람이 윌리엄 오닐이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오닐을 ‘CAN SLIM 만든 사람’ 정도로만 아는 게 좀 아깝다. 그 방법론이 대단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정작 더 놀라운 건 그가 그걸 만들어낸 방식, 그리고 그 방식으로 본인이 실제로 돈을 벌어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는 감이나 전문가 말이 아니라 수십 년치 데이터를 컴퓨터로 갈아 넣어 답을 찾았다. 그것도 1960년대에. 지금 내가 AI로 하고 있는 일을, 이 사람은 반세기 전에 방 하나를 채우는 컴퓨터로 해냈다. 그래서 이 글은 오닐을 ‘데이터로 주식을 고른 원조’라는 눈으로 풀어보려 한다. 왜 사람들이 그를 전설이라 부르는지도 같이.
신문 돌리던 아이
오닐은 1933년, 대공황이 한창이던 오클라호마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그가 한 살 무렵 갈라섰고, 어머니를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자랐다. 형편이 넉넉했을 리 없다. 여섯 살부터 신문을 돌렸다. 한 부에 5센트 하던 시절이다.
이 출발점을 굳이 짚는 이유가 있다. 흔히 ‘월스트리트의 전설’이라고 하면 좋은 집안, 명문대, 화려한 인맥을 떠올리기 쉬운데 오닐은 정반대였다. 텍사스로 옮겨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던메소디스트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1955년 졸업). 그다음엔 공군에 복무했는데, 재밌게도 생애 첫 주식을 이때 샀다. 프록터앤드갬블 다섯 주였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그가 평생 붙들고 살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 셈이다.
1958년, 그는 로스앤젤레스의 한 증권사에 중개인으로 들어간다. 계좌도 인맥도 없이 맨바닥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남들과 전혀 다른 길로 빠진다.

“왜 어떤 주식은 크게 오를까”
대부분의 중개인이 감과 입담으로 영업할 때, 오닐은 엉뚱한 걸 팠다. 질문 하나에 매달린 거다. “역대 가장 크게 오른 주식들은, 폭등하기 직전에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었을까?”
답을 찾는 방식이 남달랐다. 그는 과거 승자 종목들의 데이터를 하나하나 모아 통계로 두들겼다. “이게 좋아 보인다”가 아니라 숫자가 말하게 한 거다. 그렇게 추려낸 일곱 가지 공통점이 CAN SLIM이다. 최근 분기 실적, 연간 실적, 새로움, 수급, 주도주 여부, 기관의 관심, 그리고 시장 방향. 이 일곱 글자에 담긴 이야기는 따로 정리해 둔 글이 있으니 궁금하면 거기서 보면 된다.

하나 짚고 갈 게 있다. CAN SLIM은 그냥 오르는 주식을 쫓아가는 모멘텀 투자가 아니다. 실적이 탄탄한 기업이 바닥을 다지다가 치고 올라가는 바로 그 순간을 데이터로 잡아내는 것이다. 그 디테일은 그가 쓴 책 《최고의 주식 최적의 타이밍》에 담겨 있다.
데이터가 맞다면, 회사한테도 들이받는다
오닐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있다. 그가 아직 증권사에 다니던 시절, 본사가 어떤 종목을 “사라”고 추천한 적이 있다. 서튼티드라는 건자재 회사였다. 그런데 오닐은 자기 데이터를 보고 정반대 판단을 내렸다. 이건 사는 게 아니라 떨어질 종목, 그러니까 공매도 감이라고 본 것이다.
보통은 여기서 입을 다문다. 회사 방침을 거스르면 본인만 피곤하니까. 그런데 오닐은 그러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대놓고 “저거 공매도해야 한다”고 떠들고 다녔고, 결국 본사와 부딪쳤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나는 이 장면이 오닐의 본질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는 권위나 분위기가 아니라 데이터를 믿었다. 데이터가 한쪽을 가리키면, 그게 자기 회사 방침이라도 반대편에 섰다. 이 고집이 없었다면 CAN SLIM도, 뒤에 나올 이야기들도 없었을 거다.
그래서, 실제로 벌었나
방법론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본인이 못 벌면 공염불이다. 여기서 오닐이 전설 소리를 듣는 첫 번째 이유가 나온다. 그는 자기 방식으로 실제로 벌었고,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벌었다.
1962년 무렵, 그는 자기가 세운 규칙대로 매매해 종잣돈 5,000달러를 1년 남짓 만에 20만 달러 넘게 불렸다고 한다. 마흔 배다. 빌린 돈을 쓰고 종목을 좁게 집중한 공격적인 운용이었지만, 핵심은 그게 즉흥적인 베팅이 아니라 자기 규칙을 따른 결과였다는 점이다.
그 돈으로 그는 1963년 자기 회사를 차렸고, 이듬해 서른 살 나이에 뉴욕증권거래소 회원권을 샀다. 당시 최연소 기록이었다. 월스트리트 한복판에서 수십 년 굴러야 겨우 닿는 자리에, 캘리포니아에서 데이터만 파던 서른 살짜리가 올라선 것이다.
1965년엔 펀드도 만들었는데, 1967년 한 해에만 100%가 넘는 수익을 내며 그해 미국에서 가장 잘나간 뮤추얼펀드 중 하나가 됐다. 개인의 단발성 운이 아니라, 남의 돈을 맡아서도 통하는 방식이라는 걸 보여준 셈이다.
두 번의 신문 광고, 그리고 정확히 맞은 예측
오닐을 전설로 만든 두 번째 장면은 좀 극적이다. 그는 시장 전체의 방향을 두 번이나 큰돈 들여 공개적으로 예측했고, 두 번 다 맞았다.
방식이 호탕하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자기 돈으로 전면 광고를 냈다. 첫 번째는 1978년 3월. 시장이 바닥을 찍고 반등하기 직전이었다. 두 번째는 1982년 2월이었는데, 광고에 대놓고 “인플레이션의 등뼈가 부러졌다, 이제 회복에 올라탈 때”라고 적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 직후 역사에 남는 5년짜리 대강세장이 시작됐다.
생각해보면 이건 보통 배짱이 아니다. 시장 전망이라는 건 틀리면 그대로 망신인데, 그는 신문 한 면을 통째로 사서 자기 이름을 걸었다. 그것도 두 번 다 맞혔다. 감으로 찍은 게 아니라, 자기 데이터가 “지금이 바닥”이라고 가리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960년대에, 컴퓨터로
오닐 이야기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목이 이거다. 그는 1960년대에 이미 컴퓨터로 주식을 분석했다.
그 시절 컴퓨터가 어떤 물건이었는지부터 떠올려보자. 그가 쓰던 IBM 컴퓨터는 사무실의 4분의 1에이커, 그러니까 1,000제곱미터 가까이를 차지하는 거대한 기계였다. 개인용 PC도 없던 시절이다. 그 거대한 기계에 펀더멘털과 차트 데이터를 넣어 종목을 걸러내게 했고, 옆에 붙은 장치가 그걸 주가 차트로 그려냈다. 요즘으로 치면 혼자서 데이터 회사를 차린 셈이다.
당시 사람들 눈에 이게 얼마나 생경했는지는 한 기록이 잘 보여준다. 1969년에 나온 어떤 책에서 저자는 “오닐이 컴퓨터로 하는 모든 것은 그 자신의 발명”이라고 적었다. 따라 할 선례조차 없었다는 뜻이다. 훗날 그의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데이터 분석이 지금처럼 당연해지기 50년 전에, 아버지는 이미 금융 데이터 분석 회사를 만들었다고.
나는 이 대목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내가 AI로 미국 주식 분석 시스템을 만들면서 가장 붙들고 있는 생각이 “내 감을 빼고 데이터가 말하게 하자”이기 때문이다. 오닐은 그걸 반세기 전에, 방 하나를 채우는 컴퓨터로 해냈다. 도구만 달라졌을 뿐 정신은 똑같다. 어떻게 보면 그는 요즘 유행하는 퀀트 투자를, 그 단어가 생기기도 전에 하고 있었다.
신문 한 부로 월스트리트저널에 맞서다
오닐은 분석가나 투자자로만 머물지 않았다. 자기가 가진 데이터를 남들도 쓰게 만드는 데 진심이었다.
1972년엔 주간 차트북을 펴냈고, 1984년엔 아예 경제 신문을 창간했다. 《인베스터스 데일리》였다. 상대가 누구였냐면, 그 막강한 월스트리트저널이었다. 개인투자자에게 정말 필요한 데이터가 기존 신문엔 빠져 있다고 봤고, 없으면 내가 만들겠다고 한 거다. 맨바닥에서 시작한 사람 특유의 배짱이다.
이 신문은 나중에 《인베스터스 비즈니스 데일리(IBD)》로 이름을 바꿨고, 차트와 고유 지표를 앞세워 개인투자자들의 필독지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2021년, 뉴스코프가 이 신문을 2억 7,500만 달러에 사들였다. 신문배달로 시작한 아이가 만든 신문이, 끝내 그런 값이 붙은 자산이 된 것이다.
규칙을 지킨다는 것
여기까지 보면 오닐이 무슨 천재적인 감을 타고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는데, 그가 가장 강조한 건 정반대였다. 감을 믿지 말라는 거였다.
그는 “시장은 이길 수 있는 게임”이라고 믿었다. 시장은 효율적이라 아무도 꾸준히 못 이긴다는 학계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대했다. 다만 조건을 달았다.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데이터와 규칙을 따를 때만 그렇다는 것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규칙이 손절이다. 주가가 산 가격에서 7~8% 빠지면 두말없이 판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크게 이기는 비결은 항상 맞히는 게 아니라, 틀렸을 때 손실을 가장 작게 줄이는 것이라고. 백 번 중 몇 번은 틀린다는 걸 인정하고, 틀렸을 때 빨리 손을 떼는 게 진짜 실력이라는 얘기다.
이걸 몸으로 보여준 일화가 있다. 1962년 초, 그는 자기 규칙에 따라 보유 주식을 전부 팔았다. 본인 말로는 “그 봄에 시장이 진짜 폭락할 줄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감으로 위기를 예견한 게 아니라, 규칙이 그를 위기에서 끌어낸 것이다. 그가 책과 신문에서 평생 강조한 매수·매도 규칙들은 따로 정리해 둔 글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원조가 남긴 것
오닐은 2023년, 아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건 방법론 하나가 아니다. 마크 미너비니처럼 뒷세대를 대표하는 성장주 트레이더들이 그를 스승으로 꼽는다. 데이터로 종목을 거르고 규칙으로 손실을 끊는다는 그의 방식은, 지금도 수많은 투자자의 뼈대로 살아 있다.
다 정리하고 나서 든 생각은 이렇다. 사람들이 그를 전설이라 부르는 건 단지 일곱 글자짜리 공식을 만들어서가 아니다. 맨바닥에서 시작해 자기 방식으로 실제로 큰돈을 벌었고, 시장의 방향을 공개적으로 두 번 맞혔고, 아무도 데이터를 안 믿던 시절에 자기 감을 내려놓고 숫자를 택했기 때문이다. 그 세 가지가 다 모여야 전설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나는 개발자도 아니고, 방 하나를 채우는 컴퓨터를 가진 것도 아니다. 그저 AI라는 도구를 빌려, 내 감을 빼고 데이터로 미국 주식을 분석해보려 애쓰는 평범한 개인일 뿐이다. 그런 내가 오닐을 들여다보며 느낀 건, 결국 도구가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는 반세기 전 거대한 기계로, 나는 지금 노트북 위 AI로, 같은 질문을 붙잡고 있다. “내 생각 말고, 데이터는 뭐라고 하는가.” 60년이 지나도 이 질문 하나만큼은 한 글자도 낡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