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산업·정보화에 이어 인공지능을 네 번째 물결로 보는 AI 이후의 미래 도서 리뷰 대표 이미지

농업·산업·정보화, 그리고 네 번째 물결 — 제이슨 솅커 《AI 이후의 미래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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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DKM

6월 19, 2026

이 책을 다 읽고 한동안 한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인류가 처음 씨앗을 땅에 심고 한곳에 머물러 살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자기가 ‘문명’이라는 걸 시작하는 줄 알았을까. 아마 몰랐을 것이다. 농업혁명이 정착과 문자를 낳고, 산업혁명이 공장과 도시를, 정보화 혁명이 인터넷과 연결을 낳았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지나는 자리는 그 다음 칸, 네 번째 물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지능이 그 주인공이다.

제이슨 솅커의 《AI 이후의 미래 어떻게 될 것인가》(원제 The Future After AI)는 그 네 번째 물결의 지형을 그려보려는 책이다. 저자는 블룸버그가 세계 1위로 꼽은 미래학자이고, 미국 국방부와 CIA, NATO에 자문해 온 전략가이기도 하다. 이력이 그래서인지 책의 시선이 ‘AI 신기하다’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출발점은 한 문장이다. AI는 미래 경제의 보이지 않는 운영 체계, 그러니까 인프라가 된다는 것. 책은 네 개의 부로 나뉘어 있고, 읽은 순서대로 정리해 본다.

여는 글 — 당연해질 때 비로소 끝난다

저자는 우리가 전기나 수도, 인터넷을 두고 더 이상 감탄하지 않는다는 데서 이야기를 연다. 한때는 세상을 뒤집은 물건이었지만 지금은 그냥 깔려 있는 바닥이라 화제도 안 된다. AI도 머지않아 그 자리로 간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떠들썩하게 신기해하는 단계가 아니라,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는 단계. 변화가 진짜 끝나는 건 그때라는 것이다.

읽으면서 내가 막연하게 품고 있던 감각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AI를 정보화 이후에 온 또 한 번의 큰 변곡점이라고 느껴왔는데, 저자는 그걸 훨씬 가라앉은 언어로 짚어준다. 혁명은 시끄러울 때가 아니라 잠잠해질 때 완성된다. AI가 더는 화젯거리가 안 되는 날이, 사실은 우리 삶이 가장 많이 바뀐 날일 것이다.

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화혁명에 이어 인공지능이 네 번째 물결로 이어지는 문명 변혁 타임라인 도식

1부 — AI, 번영과 위기의 두 얼굴

1부는 AI가 ‘새롭고 놀라운 것’에서 ‘기본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다룬다. 저자는 먼저 AI를 떠밀어 올리는 현실적인 힘부터 짚는다. 미국의 경제활동인구가 역대 최고치를 찍어도 일손은 여전히 모자라고, 이 구조적인 노동력 부족이 기업으로 하여금 AI를 쓸 수밖에 없게 만든다. 계약서 초안을 잡고, 표준 업무 절차나 교육 자료를 만드는 일처럼 지금 당장 효과가 나는 영역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대신 저자는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다. 그가 독일어 표현을 빌려 말하는 ‘위험천만한 반쪽짜리 지식’이 오래 남았다. 자기가 뭘 하는지 안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사고를 칠 만큼만 아는 상태. AI를 검증 없이 믿어버릴 때 빠지는 함정이 딱 이거다. 변호사가 들여다보지도 않은, AI가 뽑은 계약서를 그대로 쓰는 위험을 그는 몇 번이고 경고한다. ‘제일 먼저 시작한 게 끝까지 살아남는 걸 보장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곱씹게 된다. 획기적인 기술을 가장 먼저 내놨다고 그 회사가 미래까지 버티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결국 1부의 메시지는 기회와 위험이 한 몸이라는 것. 둘을 같이 보는 사람만 다음 수를 둘 수 있다.

2부 — AI의 도전에 맞서다

밑줄을 제일 많이 친 부분이다. AI가 중간 관리나 뒤처리 업무를 점점 가져갈수록, 거꾸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의 값이 올라간다는 게 2부의 골자다. 존재감, 신뢰, 판단력,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독창성. 저자는 이걸 고객을 직접 마주하는 현장의 몫이라고 부른다.

특히 ‘AI가 넘볼 수 없는 진짜 가치’를 사람 사이의 관계와 갈등을 푸는 일에서 찾는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창작에 대한 경고도 따끔했다. 당신이 만든 게 평범하고 익숙한 패턴 안에 있다면, AI는 그걸 얼마든지 베낄 수 있다. 뒤집으면, 기계가 흉내 못 내는 진짜 독창성만 남는다는 말이다. 도구가 흔해질수록 자동화 안 되는 게 경쟁력이 된다는 이 얘기는, 솔직히 조금 마음이 놓이는 구석이 있었다. 기계가 잘하는 걸 두고 사람이 굳이 맞붙을 필요는 없으니까. 지킬 자리는 따로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3부 — AI 이후, 모든 것이 달라진다

3부는 이론에서 현장으로 내려온다. AI가 경제의 주요 분야를 어떻게 갈아엎는지 하나씩 짚는데, 금융에서는 AI가 감사와 사기 탐지의 정확도를 높이는 동시에 사기 수법까지 더 정교하게 만든다는 양날의 진단을 내놓는다. 에너지 쪽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터지듯 늘면서 새 발전 설비가 급해지고, 그 과도기의 현실적인 답으로 천연가스가 다시 무게를 얻는다. 의료에서는 기록과 행정이 매끄러워지고, 교육은 생성형 AI가 깔린 환경에 맞춰 가르치고 평가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짜야 한다고 본다.

제일 흥미로웠던 건 마케팅 쪽이다. ‘기업이 상대해야 할 대상은 이제 인간만이 아니다.’ 물건을 살지 말지 정하는 게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대신하는 AI가 되는 순간, 기업은 사람 감성이 아니라 AI가 알아먹는 논리로 제품을 내밀어야 한다. 투자자 입장에서 읽으면 이 3부 전체가 앞으로 어느 산업의 땅값이 오를지 가늠해보는 지도처럼 보였다.

4부 — AI 이후의 미래 전략

마지막 4부에서 저자는 미래학자 본업으로 돌아온다. 핵심은 미래를 알아맞히는 게 아니라 설계하는 것이다. 뭐가 변하고 뭐가 그대로일지 갈라보고, 갈래마다 시나리오를 미리 그려두는 시나리오 플래닝이 그 방법이다. 저자는 지금 흐름이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를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아지고 풍부해지는 AI”라고 정리한다.

여기서 전략가다운 색이 진하게 묻어난다. 그는 지금을 ‘제2차 냉전’으로 규정하고, 양자컴퓨팅이나 예상 못 한 지정학적 충격이 판을 어떻게 흔들 수 있는지, 기업 이사회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정보전 시대에 ‘누가 진실을 통제하는가’라는 물음이 왜 중요한지를 풀어낸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책의 핵심 개념인 PAR 프레임워크로 모인다. 준비성(Preparedness), 적응력(Adaptability), 회복력(Resilience). 미래는 점치는 자가 아니라 미리 준비하고, 유연하게 갈아타고, 얻어맞아도 다시 일어서는 자의 것이라는 얘기다.

솅커가 짚은 양자컴퓨팅이 실제 산업에서 어떻게 돈이 되고 어느 기업이 어디에 서 있는지는, 따로 산업 지도로 정리해 보았다.

책의 맨 끝 장 제목이 ‘준비하라, 그것이 전부다’이다. 결론은 군더더기가 없다. 가장 값나가는 일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AI에 넘기되, 자동화되지 않는 능력 — 판단력, 신뢰, 관계, 독창성, 나만의 고유함 — 을 더 키우라는 것. AI가 시간을 돌려준다면 그 시간을 어디에 쓸지는 결국 사람 몫이라는 말로 책은 닫힌다.

준비성 적응력 회복력으로 구성된 제이슨 솅커의 PAR 프레임워크 도식

두 갈래 길에서

읽는 내내 산업혁명 때 일이 자꾸 겹쳐 떠올랐다. 증기기관이 들어와 일이 기계로 넘어가던 시절, 어떤 사람들은 저 기계가 내 밥줄을 끊는다며 기계를 거부하고 부수는 쪽을 택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마뜩잖아도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올라탔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결과는 갈렸다. 기계를 끝까지 밀어낸 쪽은 시대 밖으로 밀려났고, 끌어안은 쪽은 새 시대의 주역으로 컸다.

증기기관 등장 때 기계를 거부한 사람은 도태되고 받아들인 사람은 새 시대 주역이 된 두 갈래 길 도식

나는 이번 AI도 그 갈림길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무서워서, 혹은 못마땅해서 등을 돌리는 건 마음은 편할지 몰라도 결국 같은 자리에 남겨지는 길이다. 받아들이고 먼저 손에 익히는 쪽이 다음 판을 잡는다. 나 역시 그 자세로 이 흐름을 대하려 한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 전부 다 받아들이고 전부 다 기계에 넘기는 게 정답일까.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효율로 따지면 손해여도, 사람이기 때문에 끝까지 사람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어디까지가 그 선인지 아직 딱 잘라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런데 솅커가 2부에서 짚은 것들 — 신뢰, 관계, 판단, 독창성 — 이 어쩌면 그 선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든다.

이 책은 ‘AI 대단하지 않냐’고 독자를 몰아붙이지 않아서 좋았다. 저자는 들뜨지 않는다. 그냥 담담하게 묻는다. 당신은 준비됐는가. 미래를 호들갑스럽게 점치는 대신,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남을지를 차분히 갈라 보여주는 그 태도가 이 책의 미덕이라고 느꼈다.

농업혁명도, 산업혁명도, 정보화도 모두에게 공평했던 적은 없다. 변화를 먼저 읽고 자리를 잡은 사람과, 다 지나간 뒤에야 알아챈 사람의 끝은 달랐다. 네 번째 물결도 똑같을 거다. 거창한 예언서를 기대했다면 좀 밍밍할 수 있다. 그런데 시대를 어떻게 읽고 무엇을 준비할지가 궁금해서 이 책을 펼친 사람이라면, 그 밍밍함이 오히려 믿음이 가는 지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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